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 - 머나먼 우주를 노래한 SF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쓰는 법
풀죽은 일상에 색을 불어넣고
절망 끝에서 삶을 새로이 태어나게 하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글쓰기
\'글을 쓰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불안해진다. 이틀이면 몸이 떨린다. 사흘이면 미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나흘이면 마치 고통 속에서 버둥거리는, 거세당한 수퇘지가 된 듯하다. 한 시간의 글쓰기만이 약이다. 그러면 다시 두 발로 일어서서, 쳇바퀴를 돌며, 깨끗한 신발을 달라고 소리치게 된다.
바로 그게 어떤 식으로든 이 책에서 내가 결국 말하려는 내용이다.\'
-‘책보다는 짧은, 하지만 아주 긴 제목의 서문’ 중에서
글쓰기는 생존이다. 1920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어떤 소년에게는 정말 그랬다. 이 소년은 열두 살 때부터 매일 1,000단어씩의 글을 썼고,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후다닥 달려 나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모조리 써 내려가는 작업을 빼놓지 않았다. 형편없는 작품 수십 편과 꽤 그럴듯한 작품 수십 편, 그리고 대단히 훌륭한 작품을 수십 편 썼고 역사에 남을 걸작도 여러 편 썼다. 이 소년의 이름은 레이 브래드버리, 섬세한 감수성과 놀라운 상상력으로 SF 문학계에 영원히 남을 족적을 새긴 작가이다. 기념비적인 대표작 [화씨 451』을 비롯해 [화성 연대기』, [민들레 와인]등의 작품으로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레이 브래드버리의 독창적인 글쓰기 에세이,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가 출간되었다.
우주를 노래한 음유시인, 현대 SF를 주류 문학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작가, 단편의 제왕, 두 세계에 사는 사람- 레이 브래드버리를 수식하는 별명은 무수히 많지만, 그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의 작품을 한 편 읽어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낯선 시공간을 한순간에 우리 곁으로 끌어오는 상상력과 피부를 간질이는 듯한 묘사, 슬픈 듯 아름답고 아름다운 듯 쓸쓸한 감정이 교차하며 자아내는 특유의 색채는 그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먼 우주를 바라보며 허구의 세계를 노래했지만 그의 발은 한순간도 지구를 떠난 적이 없었다. 브래드버리가 30여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써 내려간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들을 한 권으로 엮었다. 그가 쓴 수많은 작품의 원천이 되는 우물은 어디서 왔는지, 작품의 창작 과정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던 브래드버리의 독자라면 더없이 반가울 글들이고, 거장의 글쓰기를 엿보고 새로운 동기를 얻고 싶은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만족스러운 독서가 될 것이다.
몰입하여 쓰기의 즐거움과
그 위대함에 관하여
\'플롯은 인물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 이후 눈에 남은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다. 플롯은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관찰된다. 플롯은 행동을 앞설 수 없다. 행동이 끝났을 때 남아 있는 기록이 플롯이다. 모든 플롯이 그래야 한다. 달리고, 달리게 하고, 목표에 닿게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욕망은 무표정일 수가 없다. 오로지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목표를 잊고 옆으로 비켜서서, 인물들이, 당신의 손가락, 몸, 피 그리고 심장이 글을 쓰게 하라.\'
-본문 중에서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브래드버리가 글쓰기에 있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열의와 열정이다. 거장의 은밀한 비기 같은 것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글을 읽어가다 보면, 이 단순한 교훈이야말로 정말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기 위한 유일한 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브래드버리 본인이 오랜 습작 생활을 통해 직접 터득한 진실이기 때문에 더욱 큰 설득력을 얻는다. 오직 열의를 가진 작가만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깊이 몰입할 수 있고, 그랬을 때 비로소 글이 ‘쓰이기’ 때문이다.
브래드버리는 우리가 ‘일생 동안 크고 작은 사건, 풍경, 동물과 사람의 감촉, 맛, 냄새, 모습, 소리’를 잠재의식 속에 가득 채워 넣는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뮤즈가 먹고 자라는 음식이자 재료이며, 여기에는 사실 정보뿐 아니라 거기에 반응하는 오롯한 나 자신의 반응 정보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틈만 나면, 시시때때로, 내키지 않을 때라도, 작가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야 한다. 그 속에서 저도 모르게 저장해둔 보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독창성과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브래드버리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자맥질해 들어가기 위해 고안해 낸 ‘단어 연상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도 무척 유용한 기술으로, 당장 내일부터 실천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책상으로 달려가 잠재의식의 우물에서 단어를 퍼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단어 목록을 늘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단어들의 그림자 속에서 마침내 목소리를 낼 준비를 마친 이야기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브래드버리는 이런 식으로 곰곰이 자신의 속을 들여다본 끝에 온 세상의 책을 활활 불태웠으며([화씨 451』) 화성에 거대한 기지를 짓고([화성 연대기』) 끝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에서 7년 만에 찾아오는 해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온 여름을 이 하루에」)를 썼다. 그의 글 속에서 멋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색 양복을 입은 청년들은 행복에 겨워 노래하고(「멋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색 양복」) 어떤 남자는 해변에서 다시 없을 역작을 모래 위에 그리고 있는 피카소를 마주치는 불운에 맞닥뜨린다(「피카소의 여름」). 이 모든 이야기는 그가 가진 깊은 우물 속에서 퍼 올린 것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존재하는 소행성, ‘9766 브래드버리’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가 착륙한 ‘브래드버리 착륙지’
아폴로 15호의 승무원들이 달의 분화구에 붙인 이름, ‘민들레 분화구’
2008년 화성 탐사로봇 피닉스호에 실려 화성에 착륙한 [화성 연대기』
2012년 레이 브래드버리가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이례적으로 백악관 공식 성명을 내 그를 추모했다. \'그의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문화를 새로이 재편하고 우리의 세계를 넓혀준 선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를 자신의 뮤즈라 말해왔고, 스티븐 킹은 \'브래드버리가 없었다면 스티븐 킹도 없었다\'라고 단언했다. 나사(NASA)는 그의 죽음을 기리며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 로버가 화성에 착륙한 지점을 ‘브래드버리 착륙지’라고 이름 붙였다. 2008년 화성 탐사로봇 피닉스호에 그의 대표작 [화성 연대기』가 디지털 사본의 형태로 실려 함께 화성에 착륙하면서, 지구에서 브래드버리의 몸은 숨을 다했지만 그의 이름과 작품은 그가 사랑했던 붉은 행성으로 날아가 오래도록 불리게 되었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말하고 있듯 브래드버리에게 글쓰기란 삶이고 생존이었다. 글쓰기는 그의 굶주린 배를 채우고 그에게 따뜻한 외투와 집을 주었으며 가족을 먹이는 수단이었다. 동시에 그의 영혼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 책에는 일평생 치열하게, 희열에 차 수많은 글을 썼던 브래드버리의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갈망이 숨김없이 담겼다. 브래드버리는 글쓰기의 효용을 묻는 이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글쓰기에 흠뻑 취해 있어야만 현실이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글쓰기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그리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진실, 삶, 현실의 비법들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어항 밖으로 튀어 나온 물고기처럼 헐떡거리며 맥없이 쓰러지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이다. 더 상세한 이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또 글쓰기에 대한 사랑에 푹 잠기고 싶은 이들에게 기꺼이 이 책을 권한다.
번호 | 별점 | 한줄평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수 |
---|---|---|---|---|---|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