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 - 주의 기울임, 알아차림, 어우러져 살아감에 관하여
-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다시 일깨운다. 21세기에 꼭 필요한 책.\'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서펜타인갤러리 디렉터)
-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조응의 사유와 삶을 익혀야 한다.\' -주윤정(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 온전한 삶과 살리는 앎을 회복하기 위하여 인류학자 팀 잉골드가 전하는 공생의 사유
\'세계에서 빙하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인 북서 태평양 연안에 사는 틀링깃족은 빙하가 들을 수 있고, 사람들이 빙하에 대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실제로 빙하에 귀가 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지질학이 부정하는 바를 명확하게 인정하고 있다. 빙하는 바로 그 경이로운 존재감으로 이 세계에, 우리에게 현존한다는 것이다. 빙하는 눈부신 흰빛, 엄청난 습기와 한기, 그리고 특히 폭발하듯 갈라지는 소리로 존재한다. 그러한 존재 방식이 곧 빙하의 말이다. 그 소리는 우리 귀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되고, 귀 기울여 들어야 비로소 그것은 빙하의 이야기가 된다.\' -본문 중
오늘날 지구를 위협하는 총체적 생태 위기가 초래된 것은 \'인간이 조응하는 법을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영국의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말한다. 그에게 ‘조응’이란 세계 속 우리의 존재가 인간과 비인간을 포괄하는 타자와 사물들에게 빚지고 있음을 인식하며 응답하려는 감각이자, 응답을 책임으로 바꾸어나가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근대 이후 인간중심적 문명의 폐해는 과학기술적 접근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자본주의-군사주의와 긴밀하게 얽혀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계화된 지식 생산 체계 역시 더 이상 세계를 회복하는 앎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인간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는 상호작용의 그물망 속 하나의 존재자로 되돌려야 한다는 잉골드의 입장은 일견 브뤼노 라투르, 도나 해러웨이를 위시한 신유물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잉골드의 문제의식은 한발 더 나아간다. 자신의 입장이 추상적 철학 담론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생태 윤리를 향한 주장이 인간과 세계 간 근본적 단절을 초래한 학계의 지식 생산 관습 속에서 재생산된다면 무슨 소용인지를 재차 묻는 것이다. 잉골드는 최근의 신유물론, 포스트휴머니즘 논의가 제안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여전히 근대적 인간중심성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정말로 위기를 해결하려면, 철학적 담론의 폐쇄적 자기지시성에서 피난처를 찾기보다는 바로 이 세계의 거주자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일갈한다.
잉골드가 자신만의 노선으로 제시해 온 ‘조응’은 이론이기 이전에 구체적인 몸의 감각이자 행위이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의 삶에 반응하고 개입하며 얽혀 세계를 이룬 방식이다. 1970년대에 핀란드 라플란드에서 순록 사냥 및 사육을 주로 하며 살아가는 사미족의 생활 양식을 연구한 경험은 이런 관점의 뿌리가 되었다. 자신들의 삶을 인간의 언어로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미족과 지내면서 잉골드는 자연 및 동물과의 관계, 전통적으로 앎이 발생하고 수행된 과정을 직접 몸으로 깨쳤다. 그 이후 그는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본연의 조응을 다시 익혀야만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실천 방법을 찾기 위해 인류학의 경계에서 활동해 왔다. 재직한 애버딘대학교를 중심으로 인류학적 접근과 예술‧건축‧디자인 등 물질적 창작을 아우르는 교육과 연구를 해왔다. 이를 통해 손과 몸의 기술로서의 예술, 그 과정에서의 사유와 윤리의 사례를 만드는 독창적인 행보를 보였다.
(조응)은 최근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과 인식‧존재론적 전회의 흐름 속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인 인류학계의 석학 팀 잉골드의 최신작이다. 2013년 이래 약 7년간 쓴 인문‧예술 에세이를 모아 2020년에 냈다. 자신의 주요 관심사인 생태와 존재에 관한 여러 예술 작업을 매개로 한 이 글들을 일컬어 잉골드는 예술과 주고받은 ‘편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조응’을 가리키는 영단어 ‘correspondence’에는 ‘편지 주고받기’의 뜻이 있으며, 잉골드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편지 쓰는 감각이야말로 조응이라고 설명한다.) 삶과 맞닿지 않는 학술적 글쓰기를 비판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학문적 관행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아마추어로서 자유롭게 썼다\'고 밝힌다. 학계를 넘어 지식 아닌 지혜를 나누려는 태도로 ‘조응’의 내용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글쓰기 방식까지 고민한 결과물이다. 노학자가 평생의 앎과 예술에 대한 감응을 한땀 한땀 직조해 짜낸 말의 무늬들이 오래된 풍경처럼 펼쳐지며 독자를 깊고 느린 읽기로 이끈다.
- \'땅을 생명이 뿌리내린 장소가 아니라 소유를 위한 영토로 바라보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버리고, 혹은 잊고 있는가. 잉골드의 에세이는 연결된 존재들 사이의 세심한 관계를 다룬다.\' -이라영(예술사회학자)
- 구체적인 것을 향한 사랑의 윤리로 세계의 경이 속에 함께 살아 있기
\'인간을 넘어선 세계의 진실은 그 무엇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인간과 세계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도 각자의 입장에서, 돌은 돌 아닌 것과, 나무는 나무 아닌 것과, 산은 산 아닌 것과 세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돌의 경계가 어디까지이고, 어디부터 돌 아닌 것이 시작되는지는 결코 확정되지 않고 계속 변한다. 나무와 산, 그리고 인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고여 있지 않고 주변으로 새어 나가는 것이 생명의 조건이다.\' -본문 중
지구가 형성되고 물질이 작용하고 시간이 흐르고 눈과 비가 내리고, 생명이 약동하는 생태 현상을 다룬 예술에 관해 사유하며 저자는 우리가 잊은 세계의 근원을 생생히 나타내려 한다. 레드우드 나무를 태워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들어내는 조각가 데이비드 내시의 작업으로부터 빛과 색의 연원과 발현을 보고, 오래된 나무 속 나이테로부터 이전의 어린나무들을 포착한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의 작업을 통해 장엄하게 이어지는 자연의 시간을 느낀다. 지구온난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다양한 눈 내리는 소리를 좇는 예술가 미켈 니에토의 작업을 따라 날씨를 표현하는 언어의 형성을 발굴하고, 산업혁명기의 유산인 석탄 하역장 재생 프로젝트를 소재로 삶의 터전의 지속가능성을 질문한다.
학자들의 \'세계를 대상화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무균 상태의 말\' 대신 아마추어의 \'이끌림과 자율성, 책임감으로 몰두하는 말\'로 쓰인 글에서는 이 하나뿐인 세계와 세계에 속한 존재들, 그리고 살아 있음을 향한 깊은 사랑이 묻어난다. 그 사랑이 바로 잉골드가 지닌 생태 윤리다. 그는 \'세계에 대한 책임을 떠맡을 만큼 세계를 사랑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오래된 경고를 인용하며 생명과 삶을 근심하는 연구자의 역할이란 현란한 개념과 드높은 지성의 경지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알아차리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임을 몸소 보여준다.
조응하려면 무엇보다도 타자와 사물에 대한 인식틀부터 뒤집어야 한다고 잉골드는 말한다. 어떤 존재도 인간의 근시안적 상상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물을 지칭하는 명사를 동사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위하며 스스로를 생성해 내고 있다. ‘돌’이 아니라 ‘돌의 짓을 하는 돌’, ‘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짓을 하는 나무’, ‘인간’ 역시 ‘인간의 짓을 하는 인간’으로 대할 때 서로 어우러지며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의 진리를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숲과 바다, 생태계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전해준다. 오래전 빙하의 움직임과 지각 변동의 흔적을 읽어내며, 자연에 기대고 깃들여 살았던 인간 삶의 흥망성쇠를 떠올린다. 다양한 존재자들이 끊임없이 얽혀 온 움직임 자체가 놀라운 드라마임을 예민하게 드러낸다. 그 감수성과 통찰력을 통해 우리는 한 생명체로서 세계의 경이 속에 함께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된다.
- \'이 책은 가장 인간적인 문화의 결정체인 예술 역시 결국 자연이라는 무한한 우주 안에서 구분되지 않고 함께 존재하고 있다 말하며 걱정 많은 예술가인 나를 안심시킨다.\' -박선민(미술작가)
- 다시 세계에 생의 약동을 불어넣고 시적으로 거주하는 삶을 요청하는 독창적 존재론
\'자연은 침묵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을 수는 있다. 우리가 과학의 프로토콜이 요구하는 대로 세상에 대한 사실과 명제에만 귀를 연다면 정말이지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나무에 부는 거센 바람, 폭포의 울부짖음, 새들의 노래 등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들은 그저 명제에 그친다. 우리는 이 세계에, 세계에 속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본문 중
세계가 전해주는 \'은유적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예술의 방식을 경유해 잉골드는 강조한다. 우리가 발 디딘 땅과 경관은 온갖 삶들이 이어져 이룬 터전이라는 것, 땅이 갈아엎어지며 되풀이해 작물을 맺었듯, 이 세계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지나가지 않고 가라앉고 드러나고 깎이고 새기는 만물의 움직임들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순환된다는 것. 이런 통찰은 문명과 제도에 대한 이해를 뒤흔든다. 우리는 과연 진보해 왔는가? 인간 진보의 최전방으로 여겨지는 거대한 규모의 과학기술과 고도로 추상화된 지식으로 과연 지금의 기후위기와 멸종의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회복할 수 있는가? 질문은 거듭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다.
근대적 사고방식의 틀을 넘어 다시 거주지로서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사유의 여정은 앎의 기본 요소인 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잉골드에게 말은 존재를 나타내고 타자와 관계 맺는 가장 인간적인 역량이자 권리로, 말의 타락이야말로 인간과 세계 간 관계가 파국에 이른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잉골드는 세계와의 단절을 가속화하고 숙고를 가로막는 말의 사용을 분석한다. 예를 들면 영국 국방부가 발표한 군사용어 중 상당수가 약어임을 지적하며, IED(급조폭발물), WMD(대량 살상 무기), SAM(지대공 미사일), NKZ(핵 살상 지대) 등의 두문자어가 차마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악한 힘의 작용을 간단한 사안처럼 포장해 실재로부터 분리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향은 기업과 국가 권력에 힙입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비례해 심화되고 있다.
평생 생태와 삶을 탐구해 온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호소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귀한 삶의 방식인 언어와 이를 통한 교감을 회복하자고, 환영과 질문과 응답으로 말을 다시 빛나게 하자고, 장인처럼 우리의 말을 다시 다듬고 빚어내자고. 그런 의미에서 잉골드는 ‘언어’ 역시 명사 아닌 동사로, ‘언어하기’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언어 역시 말하는 이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인식해 조응하자는 것이다. 한 예로 인간의 목소리와 몸짓과 정동과 고유성, 시간의 흐름을 품은 말과 손 글씨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세계에 삶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이며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계에 다시 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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