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실험실 - 될 때까지 그저 반복 또 반복
\'우리는 그곳에서 기약 없는 꿈을 향해 인생을 내놓았다\'
20여 년간 야생 벼를 연구한 과학자의 실험실 이야기
\'온통 쌀이었다. 내 20여 년 인생에서 쌀과 관련되지 않은 건 없었다. 실험실 동료는 모두 쌀을 연구했다. 여기저기 놓인 논문, 책, 실험 기기 모두 쌀이 주인공이었다. 실험실 주변이나 밖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실험실에 속한 논과 온실과 창고와 배양기에, 벼로건 쌀로건 여러 모습으로 내 주변에 있었다. 하루 24시간, 1년 내내, 어느 때라도 나를 반겼다. 가족이나 친구보다도 훨씬 더 자주 그리고 오래 나는 쌀과 만났다.\'
아무튼 시리즈 66번째 작가는 과학자다. 벼를 연구한 식물학자, 그중에서도 야생 벼의 유전 정보를 연구한 유전육종학자다. 어릴 적 작은 계기로 벼를 연구하겠다 결심한 뒤, 그렇게 20여 년을 벼만 연구했다. 그런 작가이기에 처음 벼를 접한 수원의 연구실부터 미국 뉴욕 이타카,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다시 돌아온 서울까지, 실험실이야말로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다.
유전 정보를 얻기 위해 벼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기까지, 그렇게 얻은 벼 한 포기에서 수만 가지 유전 정보를 찾기까지, 조금은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과학자의 세계를 전달하는 한편으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반복 또 반복하는 과정은 무언가를 애정해본 이만이 가질 법한 익숙한 마음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로서 또 다른 흥미와 감동을 전한다.
어쩌면 좌절과 낙심, 분투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
\'벼와 함께한 20여 년 동안 그랬다. 인기 학과가 아닌 비인기 학과에 진학했고, 지방 국립대를 나왔다. 유학 간 미국에서는 외국인이었는데 심지어 외국인 중에서도 영어를 잘 못하는 아시아인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화학회사에 근무하는 생물 전공자다. 그것도 기업체에서 제일 많이 필요로 하는 동물이나 미생물도 아닌 식물 전공자. 그중에서도 비인기 식물인 벼, 벼 중에서도 하필 벼가 아닌 것 같은 야생 벼를 연구했다.\'
작가는 스스로 비주류, 변두리에 있는 사람, 느릿한 사람, 실험에 ‘꽝손’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같은 실험에서 다른 이들과 달리 ‘결과 없음’이라는 결과를 얻는다. 몇 년째 진행하던 박사 연구 주제를 엎고 새로 시작한다. 반은 농부, 반은 과학자로 살아가기에 벼의 시간에 맞춰 살고 때를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울감이 휘감은 겨울의 캠퍼스에서 작가 역시 업무 이메일을 열지도 못할 만큼 극도로 낙심하고 두려워한다.
야생 벼는 농사에 부적합하다. 알곡이 적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쌀이 후두둑 떨어지고 거추장스러운 까락도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라고 병해충에도 잘 견딘다. 한마디로 생명력이 끈질기다. 그 안에 분명 반짝이는 것이 있다. 물 속에 잠겨서도 더 오래 버티는 벼도 있다. 작가와 같은 유전학자, 육종학자들이 합심해 만든 새로운 벼다. 저자 또한 홍수에 빠진 것 같은 낙심 가운데서도 다시 한 발 딛고 나아간다. 야생 벼를 연구한 과학자답게, 그렇게 벼에게서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공간 속 아주 보통의 삶에 관한 이야기
\'우울할 때면 온실을 찾았는데 온실을 찾으면 우울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완전히 물 속에 잠긴 것만 같았다. 연구 의욕을 잃었다. 학위를 마치는 건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이곳에서 도망칠지 아니면 버틸지. 그리고 나는 모두가 말리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박사학위 연구 프로젝트를 바꾸기로 했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다. 그 무렵 모니를 만났다.\'
이 책은 각자의 꿈을 향해 전진하면서도 서로를 잊지 않고 보듬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약 없는 꿈을 향해 인생을 내걸고 모인 사람들. 전 세계에서 벼를 연구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명이 꺼져가면서도 연구의 의지를 놓치 않은 모니, 한없이 곁을 내어주며 같이 나아가자고 힘을 준 라일라. 매일 아침 이메일을 대신 열어주고 안심시켜준 또 다른 동료, 우울할 때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용기를 북돋운 지도교수.
20여 년을 연구하고도 작가는 이제 조금, 겨우 아주 조금 벼를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기까지 실험실이라는 냉정한 공간에서 함께 분투한 동료들과 나눈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고백한다.
지난한 실험실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버티고 지킨 이야기, 한없이 곁을 내어준 동료들과 함께 버티고 성장해온 이야기는 비단 실험, 연구에 대한 이야기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에 대한 은유이자 성찰로서 감동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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