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신유물론이다 -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의 생각
\'핸드폰, 탁자도 살아 있다고?\'
‘공생’을 위한 실천, 신유물론 입문서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몇 년간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휘둘리면서는 충격을 넘어 공포심마저 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전에 겪은 적 없는 폭염, 홍수, 추위 등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인류는 이러다 정말 종말이 오는 것 아니냐며,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대안적 삶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급부상한 사상이 신유물론이다.
사물도 살아 있다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 로지 브라이도티, 제인 베넷, 도나 해러웨이, 카렌 바라드 등 대표적인 신유물론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신유물론이 무엇인지 쉽게 안내하는 입문서다.
신유물론은 ‘물질’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는 철학이다. 구유물론에서는 인간 말고는 다 ‘물질’이었다. 여기서 물질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수동적인 죽어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연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여성이고 말이다.
신유물론은 이렇게 물질로 폄하되었던 것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물질들 안에서 능동성과 생기, 활력 등을 찾아낸다. 모든 물질은 스스로를 변화해 갈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의 이상기후 현상은 자연이, 지구가 더는 참을 수 없다고 항변하는 목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 신유물론이 페미니즘과 밀접한 이유이다.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자연, 물질,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다.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만이 아니라 배제되어 왔던 다른 한 축에 대한 권리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인 동시에, 주체라고 여기던 것들이 환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즉 페미니즘은 배제되었던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신유물론을 페미니즘이 확장된 결과로 보기도 한다.
공멸이 아닌 공생을 위하여
신유물론 관점에 따르면,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이 이분법이다. 그동안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에서 군림해 왔다. 세상을 인간과 인간 이외의 것들로 이분화하고 맨 위 자리를 고수했다. 기존에 폄하했던 물질이 인간처럼 생기를 갖고 있다면, 이제 인간과 물질은 대등해졌다. 이분법을 해체해야 하는 것이다.
신유물론은 이분법 해체 후 인간은 물질로서 다른 물질과 동등한 관계를 맺으며 얽히고설켜 살아가라고 한다. 그것이 공멸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물질과 물질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려면 이분법만큼 꼭 깨져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오랜 시간 서양 철학을 지탱해 온 ‘실체’라는 개념이다. 실체란 무엇인가. 변하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변하지 않겠다면, 다른 것과 관계를 맺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가. 신유물론자들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단 한번도 같은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유물론은 실체란 개념 역시 폐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분법 해체, 실체 폐기, 동등한 관계 맺음을 통해 신유물론이 이르고자 하는 지점은 ‘공생’이다. 지금처럼 자연 등을 짓밟고 올라선 삶은 결국 그 당사자도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은 공멸이 아닌 공생을 위한 하나의 실천인 것이다.
5인의 철학자로 만나는
신유물론 입문서
이 책은 대표적인 신유물론자 5인의 사상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신유물론에 입문시킨다. 특히 각 철학자의 핵심 개념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 로지 브라이도티의 유목하는 주체?반재현주의?비판적 포스트휴먼, 제인 베넷의 생기적 유물론?사물-권력, 도나 해러웨이의 자연문화?반려종?사이보그?퇴비, 카렌 바라드의 행위적 실체론?내부-작용?행위적 절단?물질-담론적 실천?회절적 방법론 등이다. 어렵고 낯선 개념들이지만, 이 개념들이 지향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내용들이다. 인간뿐 아니라 인간 이외의 것들, 하다못해 핸드폰 같은 사물도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다는 것, 인간은 물질로서 다른 물질과 동등한 관계를 맺으며 새롭게 변화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그것이 공생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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