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
-역사는 어떻게 학살의 무기가 되는가?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만들어 낸 이스라엘에 대한 10가지 신화
-이스라엘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왜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용기 있는 시도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현대 교양인이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단편적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이스라엘과 서구 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들이다.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프레임에서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술된 약속된 옛 땅을 찾은 민족이며, 가련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고, 중동 국가들의 위협을 이겨 낸 위대한 국가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고, 그 땅의 ‘일부’ 정주민들은 유대인의 평화로운 정착을 방해했으며, 틈만 나면 테러를 저지르며 평화를 거부하는 야만인들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고 팔레스타인에 적대적인 이러한 시각이 이스라엘과 서구 세계가 합작한 역사 왜곡에서 비롯된 것임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이어질 역사의 왜곡이 비판할 수 없는 신화가 되고,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앞으로도 지속될 종족 청소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
일란 파페는 비판을 막는 이스라엘에 대한 10가지 신화를 뽑아내 역사적 맥락과 근거를 가지고 비판한다. 이 책의 감수자인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 교수는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반유대주의의 가해자였던 유럽과 서구 사회가 홀로코스트에 침묵하면 떠안게 된 원죄 의식은 1948년 독립 이후 이스라엘에 보내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연대로 나타났고, 이를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배려로 포장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의 기본권 침해에는 침묵하는 서구의 도덕적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희수 교수가 요약한 바와 같이, 일란 파페는 이스라엘이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려는 반유대주의의 결과물이며,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이스라엘에 대한 부채감으로 유럽과 서구 사회가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시오니즘은 성서적 복음주의로 포장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수천 년간 살아온 곳을 식민지화하고 신의 논리로 종족 학살을 벌이고 있음을 논증한다. 삶의 모든 기반을 잃어버리고 최소한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노예 계약과 같은 평화 협정을 강요하고 결국 팔레스타인은 저항한다. 이것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앞으로도 이어질 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비판받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 입장에서 탈맥락화하고 탈역사화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를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고 시오니즘의 식민주의적인 성격을 지적하면 반유대주의자가 된다. 역사와 맥락을 제거한 공간에 들어선 이스라엘 건국 신화는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전쟁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유대인 학자 일란 파페는 자신의 책을 \'균형 잡힌 책이 아니며 오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에서 식민지화되고, 점령당하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신해 권력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로 평가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변하려는 사람은 없다. 역사 전쟁에서 패배한 이 사람들의 눈앞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 게토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는 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간다. 우리가 팔레스타인에 눈을 감는 한 남은 해법은 단 하나, 팔레스타인 말살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학살의 피해자에서 21세기의 학살자가 되었냐고.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물어야 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서구의 시선을 넘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을 보여 주는 역작
-왜곡된 역사가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경고
뉴스로 접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조금 과도해 보이는 보복’ 정도로 전해진다. 우리는 저 멀리 중동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며 ‘사이좋게 지내지’라는 생각을 하다 일상으로 돌아온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감옥 속에서 종족 청소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이스라엘은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2024년 5월 현재 전쟁 범죄를 담당하는 국제형사재판소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체포영장 발부를 시도하고 있지만 설령 영장이 발부된다고 하더라도 네타냐후가 실제로 체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네타냐후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보복으로 가자 지구를 침공했다. 그 결과 가자 지구 내에서만 3만 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 대다수는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이다.
하마스의 도발과 테러에 맞대응하는 이스라엘은 우리에게 익숙한 구도다. 그런데 하마스는 왜 테러를 벌이는가? 왜 인간을 폭탄과 방패로 쓰는가? 서구 언론이 전하는 하마스는 비이성적이고 광신적인 테러 집단처럼 보인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는 테제는 유효하다. 그러나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선택지가 펼쳐져 있을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면 식민지 시대 조선과 조선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반유대주의는 언제나 유대인을 움츠리게 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오니즘과 전쟁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원래 땅이 없는 유대인이 약속의 땅을 찾아야 한다는 시오니즘의 비전은 환영받지 못했다. 국민 국가가 탄생하면서 유대인들도 국가의 국민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미 정주민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은 유대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팔레스타인에 정치적 공백이 생겼다. 여기서 시오니즘과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결탁한다. 시오니즘은 복음을 앞세워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려고 했고, 유럽은 유대인들을 유럽에서 몰아내고 싶어 했다. 여기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됐다. 이스라엘 건국은 정치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의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면죄부였다.
그 결과 만들어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빼앗고 군대를 동원해서 팔레스타인 땅 밖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순식간에 난민이 됐다. 유대인들이 처음 팔레스타인에 와서 정착할 때 도와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제 식민지 주민이 되어 버렸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아 거대한 감옥 게토를 만들었고 생필품을 통제했다. 목숨 줄을 쥔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을 제시한다. 아무런 정치적 외교적 자주적 권한 없이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되라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통보다. 몇천 년간 살아온 땅의 주인들은 순식간에 노예가 될 처지가 됐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선택지는 존재하는 것일까?
일란 파페가 전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는 왜곡된 역사가 어떻게 학살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스라엘은 중동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피해자로 각인되어 있다. 중동이 먼저 도발하고 이스라엘은 정당방위를 한다. 상대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와 주인의 손발을 묶어놓고, 주인이 침을 뱉으면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정당방위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비판하면 반유대주의자가 된다. 홀로코스트 옹호자가 되느니 팔레스타인 게토를 긍정하는 게 낫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과 하마스는 말이 통하지 않는 테러범이고 이스라엘은 선량한 피해자가 된다. 실상은 이스라엘이 21세기에도 식민지화를 진행하는 나라이며, 200만 명을 넘게 수용하는 감옥을 만들고, 생필품을 통제하여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아무도 이스라엘의 진짜 건국 과정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스라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역사는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신화가 됐다. 역사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 이스라엘은 학살의 가해자가 됐다.
유대인 역사학자의 이스라엘 비판은 ‘땅과 깃발(영토와 국기)’ 앞에서 인류의 양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탈맥락화, 탈역사화했기에 가능했다. 이스라엘은 원하는 대로 역사를 조작하여 면죄부를 얻었다. 역사라는 감시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은 괴물이 된다. 일란 파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는 저자 자신의 평가처럼 균형 잡힌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만큼은 편향되어 있지 않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은 복잡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관점임을 이 책은 보여 주고 있다.
번호 | 별점 | 한줄평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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