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종말
부조리한 현실을 묘파하는 정보라 소설의 신기원
전 세계를 매료시킨 ‘보라 월드’의 최신 단편소설 10선
\'정보라 소설을 통과한 이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 - 전청림 문학평론가
\'재밌으면서 새로운, 빠르면서 가차 없는, 그러다가 뭉클하니 솟구치는--.
현대 한국문학의 새로운 피켓이 된 그와 함께, \'가자.\'\' - 송경동 시인
\'이렇듯 작고 미묘하게 튀어나온 못 같은 사람들을 언제나 거기에서 보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품어낼 수 있다니. 아름답다.\' - 이서영 작가
(저주토끼) 이후 한국문학의 ‘새로운 피켓’이 되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작가 정보라.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유별난 상상력으로 독자를 매혹하는 그가 새 소설집 (작은 종말)을 선보인다. 2020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발표한 최신 단편 열 편을 묶었다. 호러보다 더 으스스하고 기괴한 현실을 밀도 있게 묘사한 이야기들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2022)과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2023)에 연이어 최종 후보로 선정된 정보라의 ‘지금’을 오롯이 만날 기회를 선사한다.
타인과 이종(異種)의 고통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문학적 감수성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대와 불화한다. ‘효율적인’ 육아라는 명목 아래 신체를 기계로 전환한 동생과 갈등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작은 종말〉), 함께 데모하는 동지를 상실한 이후 그를 회고하는 무성애자(〈지향〉), 전국에 딱 세 개 남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서(〈도서관 물귀신〉), 매번 역사적 현장에서 허리가 폭발하는 악몽을 꾸는 피해 생존자(〈증언〉), 군사 정권에 엄마를 잃고 10주기 추모 행진을 준비하는 딸(〈행진〉)이 바로 그들이다.
불온한 이들의 목소리로 더욱 짙어진 ‘보라 월드’는 거부할 수 없는 초대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제안이다. \'정말 세상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작가는 묻는다. \'왜 우리가 도망쳐야 해?\'(〈행진〉). 모두가 투사가 될 수 없지만, 소중한 사람과 매일의 일상을 지키려면 투쟁을 피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 정보라 소설은 방관을 멈추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한다.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1-2권에 이어 또 한 걸음을 내디딘 이번 소설집에서 더욱 날카로워진 ‘보라 월드’를 만나길 기대한다.
\'우리는 어둠 속의 삶을 뒤로하고
이 봄날의 처음으로 자유로운 아침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걷기 시작한다.\' - 본문 중에서
2020년 이후 최신작을 모은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Vol.3
‘불온한’ 이들의 목소리로 반짝이는 보랏빛 세계
(저주토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히 각인시킨 정보라 작가가 새 소설집 (작은 종말)로 독자를 만난다. 이번 소설집은 2020년부터 2023년 겨울까지 발표한 열 편의 소설을 묶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2023)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2023)에 이어 퍼플레인에서 펴낸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시리즈의 앞선 두 권이 오늘날 정보라 소설의 뿌리와 심연을 파고드는 심층 해부도였다면, 이번 소설집은 탄탄히 구축한 ‘보라 월드’를 한눈에 보는 명쾌한 조감도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록된 소설이 모두 2020년대 전반기에 쓰고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작가는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2022) 최종 후보에 선정되어 국내외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2023)에 한국인 최초로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으며, 라이프치히도서전상 번역서 부문(2024)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대와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지금, 작가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이번 소설집은 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끈적거리고, 유쾌하고, 시종일관 수다스러운 화려한 환상 속에서 정보라는 매우 신중하게 진실에 집중한다. 차가운 얼음처럼 또렷하고, 망설이는 법이 없이 강렬하다. -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단 한 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는 정보라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우리를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의 세계로 초대한다.
- 349쪽, 전청림(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성소수자-이주민-비정규직-피해 생존자 ---
서늘한 공포가 일상을 잠식한 야만의 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
저주받은 영혼, 결연한 투쟁, 잔혹한 복수의 이야기를 짓는 정보라는 사회에서 소외된 시선과 목소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지향〉의 주인공은 함께 데모하는 동지를 상실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무성애자이다. 표제작 〈작은 종말〉에서는 ‘효율적인’ 육아라는 명목 아래 신체를 기계로 전환한 동생을 만류하고, 끝내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가 등장한다. 이외에도 전국에 딱 세 개 남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사서(〈도서관 물귀신〉), 매번 역사적 현장에서 허리가 폭발하는 악몽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피해 생존자(〈증언〉), 군사 정권에 엄마를 잃고 10주기 추모 행진을 준비하는 딸(〈행진〉) 등 작가는 지면 곳곳에서 시대와 불화하며 소외된 이들에게 애틋한 시선을 건넨다.
젠더, 성, 계급, 노동의 문제에서 시작해 인종, 동물, 환경 정의의 문제까지 융합한 다양한 서사를 술술 풀어내는 정보라의 소설은 차별 안에 여러 억압이 거미줄처럼 엮여 다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는다. - 이때 개인이 겪는 다층적인 차별의 논의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일, 그리고 더 나은 권리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란 더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에 정보라의 소설은 주의 깊게 예리해지며, 견고하게 구축된다.
- 350쪽, 전청림(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소설집을 먼저 읽은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정보라 소설이 추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정보라 작가를 ‘동지’라 부르는 송경동 시인은 \'한국문학은 정보라 작가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그를 통해 신세계를 엿본 이들에겐 이미 명백한 사실\'(‘추천의 말’, 370쪽)이기 때문이다. (어션 테일즈 No.4)(아작, 2022)에 ‘마술적 사실주의와 SF 트러블 ― 정보라론’을 게재하며 작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밝힌 전청림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정보라의 소설을 통과한 이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다시는 방관자가 될 수 없다.\'(‘작품 해설’, 353쪽) 현실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면서도 기기묘묘한 분위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정보라 소설은 이처럼 매력적이고 동시에 불가항력적이다.
어떻게 이토록 드높은 이성과 따뜻한 감성과
부지런한 실천과 다른 세계를 향한 뜨거운 의지가
한 사람의 작품과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놀랍다.
- 370쪽, 송경동(시인, ‘추천의 말’)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측불허의 서스펜스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상상력으로 벼린 하이퍼 리얼리즘
어쩌면 정보라와 그의 소설을 특정한 장르에 국한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는 무용할지도 모른다. 대표작 (저주토끼)를 비롯해 퍼플레인에서 펴낸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시리즈와 연작소설 (한밤의 시간표)은 대체로 환상문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것이 정보라 소설 전부는 아니다. 호러와 환상의 세계에서 한 걸음 벗어나 SF와 스릴러를 접목한 (고통에 관하여)(다산책방, 2023),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환상문학에 녹여낸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래빗홀, 2024)에서 볼 수 있듯 정보라는 통상적인 분류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장르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만하다. 정보라 소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을 환상문학(〈무르무란〉 〈은둔자의 영혼〉), AI와 기계화가 일상의 깊은 곳까지 스며든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SF(〈작은 종말〉 〈낙인〉)는 ‘보라 월드’가 익숙한 독자에게 알고 있지만, 그래서 멈출 수 없는 ‘아는 맛’의 즐거움을 전한다. 반면 작가가 수록 작품 중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가슴 아픈 단편\'(‘작가의 말’, 345쪽)으로 꼽은 〈지향〉과 \'가장 즐겁게 썼던 이야기\'(344쪽) 〈개벽〉은 환상과 호러, SF라는 익숙한 문법을 덜어낸 이야기로 기존 정보라 소설과 결이 다른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행진>과 <증언>을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쓰면서 안면인식 기술과 휴대전화 사찰,
위치추적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개인 시민에 대한 감시와 정치적 탄압이
일상이 된 세계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
<작은 종말>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내용을 오마주해서 써 달라는 원고 청탁에 따라)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라는 소설을 모티브로 하고 대학에서
\'SF를 통한 자아의 발견\' 수업을 할 때 다루었던 여러 주제를 섞어서 썼다. -
<지향>은 나의 실제 데모 동지를 모델로 해서 썼다.
책에 수록된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가슴 아픈 단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실제보다 리얼한 소설, 소설보다 끔찍한 현실
부조리한 세상을 묘파하는 잔혹한 현실 우화
열 편의 소설 중 후련하게 웃을 만한 ‘해피 엔딩’은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 남겨지거나, 세계의 이단으로서 고립되거나, 계속 살아가야 할 막중한 숙제를 떠안는다.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끝내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에는 실패한 이들의 도전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표제작의 제목에서 종말 앞에 놓인 ‘작은’ 두 글자에 주목해 본다. 어쩌면 눈앞의 파국은 그들을 감싼 세계의 종말일 뿐, 삶 자체의 종말이 아니다. 그들이 끝끝내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면, 이는 어쩌면 눈앞의 현실이 ‘작은’ 종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메시지는 아닐까.
정보라의 시선은 언제나 현실의 고통을 향한다. 그의 작품을 두고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표현하는 세간의 평이나 ‘극사실주의 작가’를 지향하는 작가의 태도는, 그가 잠시도 현실문제를 잊지 않고,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열망을 소설로 그리는 작가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보다 더 잔혹한 현실 세계를 직시하고,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를 상상하는 작가. 정보라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불편하지만 매혹적인 세계로의 초대. 이 소설을 통해 더 많은 독자가 그와 함께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어둠 속의 삶을 뒤로하고 이 봄날의 처음으로
자유로운 아침을 향해 두려움 없이 걷기 시작한다. - 335쪽,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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