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다람쥐와 대화하는 사차원 예비신부 베블런.
군용의료기를 개발하는 야심만만한 의사 폴.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고양이를 기르며 혼자 살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남자가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며 청혼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통속 로맨스로군, 생각하는 순간, 말하는 다람쥐가 등장하더니 여주인공의 결혼을 진지하게 반대하기 시작한다. 어라, 로맨스 판타지물인가. 하지만 곧이어 전쟁 트라우마의 비극과 반(反)물질주의, 자연주의에 관한 (철학적 사회학적 배경을 든든히 갖춘) 논쟁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급기야는 의료 마케팅과 방위산업이 얽힌 음모와 서스펜스가 펼쳐진다.(심지어 남자 주인공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결혼 준비를 하는 두 남녀가 알콩달콩 티격태격하는 연애소설이 500쪽이 넘어가는 장편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에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제도적/공식적 결합을 목전에 두고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갈등과 현실적 고민들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베블런과 폴은 매력적인 선남선녀 커플이지만, 실은 평생의 반려자에게조차 솔직해질 수 없고 인정하기 부끄러운 가족사를 안고 있다. 둘은 자신의 부모가 예비 사위, 예비 며느리에게 말실수를 하거나 치부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한다. 다른 한편, 둘은 상대의 집안이 우리 집보다는 조금 더 콩가루라 그나마 다행이라며 자기 부모를 안심시킨다. 정상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가망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부모와 형제의 과한 애정, 지나친 간섭, 희생의 강요, 저마다 안고 있는 마음의 상처 등이 두 사람의 결혼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듯 터져나온다.
번호 | 별점 | 한줄평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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