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평생에 한 권의 시집만 펴내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요약하기에는 내 속의 열기와 사랑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던가보다. 그리고 내 속의 환상과 동경이 너무 번화하고 복잡했던가보다.
나는 한 때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마흔이 되기 전 서른아홉 살쯤에, 그 나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서, 인기 절정의 배우가 무대에서 퇴장하듯이 나는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쇠락해 가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지 않아, 영원히 추억 속에 젊어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들에게 아쉬움과 미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야 말로 얼마나 집요한 세상에의 집착인가.
금년 여름도 무르익어 가고 있다.
아름다운 이 지상의 여름에 시집을 엮는 나는 과연 행복한가? 아니다. 내 가슴은 허허롭다. 그러나 사는 일이 허허롭다는 말은 사치스럽다. 영혼의 등을 높이 밝히고 더운 피를 찍어서 ´바로 이것이다´라고 가리킬 수 있는 한 편의 시를 쓰자. 시를 쓸 때마다 그것이 내 생애의 마지막 작품인 듯이 그렇게 하자.
죽어서도 영원히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고 싶어 했던 내 어린 시절의 치기까지도 사랑하면서 나는 부디 이후로도 많은 시를 쓰고 싶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살아 있음의 징표와도 같은 아름다운 시집을 엮어내고 싶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소서.
그 동안의 내 눌변은 당신의 빛나는 어휘로 덮어 주시고, 그 동안의 내 어리석은 달변은 긍휼히 여겨 주소서.
― 이향아, 책머리글 <시인의 말>
저자소개
저자 : 이향아
● 이향아 시인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대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기독문인협회 회원. ‘기픈시’, ‘동북아기독작가회 회장
△호남대 명예교수
△경희문학상, 시문학상, 전라남도 문화상, 광주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미당시맥상, 창조문예상 등 수상
△시집『온유에게』, 『화음』, 『어머니큰산』, 『흐름』, 『오래된 슬픔 하나』, 『물푸레나무 혹은 너도밤나무』 등 20권
△수필집 『종이배』,『쓸쓸함을 위하여』 등 15권
△문학이론서 『시의 이론과 실제』,『한국시, 한국시인』, 『창작의 아름다움』 등 7권과 기타 논문 다수
목차
책머리에
제1부 내게도 유서를 쓰던 밤이 있었다
개망초꽃 칠월
가을 풍경화
축하하고 싶다
여름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름
유서를 쓰던 밤
불구경
새 동네로 따라온 달
오동꽃 다시 피었다
하산하려고 하네
잠옷을 갈아입으며
어느 날 때가 되면
빨래를 널고서
어머니의 밥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노중에 있다
냉잇국을 마시며
제2부 저녁선창 불빛을 바라다보며
누가 날 찾나 보다
그 시절 새벽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풀숲은 밤으로
축배
바다는 갈가마귀 소리로
어디서 누가 실로폰을 두드리는가
잎새에게
들판 속으로
지하도에 내려서면
일과 사랑 1
일과 사랑 2
일과 사랑 3
일과 사랑 4
일과 사랑 5
일과 사랑 6
일과 사랑 7
일과 사랑 8
일과 사랑 9
제3부 지금은 그대를 사랑할 때
낙원은 낯설지 않다
하강
바람은 숲으로 모인다
8월에는
화정동에서 쌍촌동까지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다시 고호에게
그 남자 고호
시들고 있다
비운 항아리처럼
안녕하십니까, 고갱씨
황색 그리스도
타히티의 길
목매단 사람의 집
앙금과 검불 사이
일상의 빌라도
이방인, 차이코프스키
왕이신 당신
지금은 그대를 사랑할 때
울음처럼 깊은 말로
제4부 이 세상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
소련의 젖은 흙
시낭독회
아라이 모로즈
발트해를 바라보며
알마아타
페테르부르크
사과꽃
서커스의 곰
파스테르나크 씨에게
페레델키노
내가 모스크바에서 돌아올 때
징기스칸
마유주
잘하신 일입니다, 할아버지
들판의 천막집
고비사막을 지나며
몽고 인상
몽고는 거기 있더라
그 나라의 속도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었다
세계를 걸어서
빨강색에 대하여
이빨 빠진 접시
시작노트 | 나의 시, 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