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유감
◎ 도서 소개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판사의 판결은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 그리고 인생을 좌우할 만큼 막강하다. 또 사회와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막중한 권한에 대한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을 향해 연일 변화에 대한 촉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또한 그저 머나먼 성역에 가 닿지 않는 메아리로 느껴질 뿐이다.
이러한 시기에 조심스럽고도 단단한 목소리를 내는 판사가 있다. 그가 바로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문유석이다. 저자 문유석은 9년 전 법관 게시판에 올린 ‘파산이 뭐길래’라는 글이 처음 언론에 소개된 이래 최근까지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처음 대중에게 글이 소개된 후 기대치 못하게 받았던 뜨거운 반응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벌써 9년 전이지만 ‘파산이 뭐길래’를 썼을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법원회보에 쓴 그 글이 어떻게 된 건지 인터넷에 엄청 퍼졌더군요. 댓글도 수백 개 단위로 달리고요. 저는 그때 천 개 가까이 되는 댓글들을 다 읽었습니다. (…) 솔직히 촌스럽게도 댓글들을 읽다가 펑펑 울었습니다. 왜냐고요? 감동해서가 아니고 그분들께 죄송해서입니다.
사실 제 글은 지극히 상식적인 글일 뿐입니다. (…) 그런데 많은 분들이 글 내용 자체보다도 단지 ‘판사’가 쓴 글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과하게 고마워하시고, 감동하시더군요. 도대체 이 나라 공직자들이 얼마나 냉정하고 시민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냉혈한으로 보여 왔기에 그렇게 반응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국민들이 고마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힘들게 벌어서 내는 세금으로 월급받고 편안하게 사는 저 같은 자들은, 원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라고 월급받고 사는 겁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프로페셔널들에게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걸 안 하는 자들을 질타할 일이지 그걸 한다고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말만 번지르르한 저 따위보다 훨씬 훌륭한 많은 분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힘든 이들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공직에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믿지 않으셔도 말입니다.
_ ‘에필로그’ 중에서 (243~244쪽)
『판사유감』은 저자 문유석이 법관 게시판과 언론 등을 통해 지난 10여 년간 국민과 법정 가운데서 균형 있는 시각으로 써 온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판을 통해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에 대한 생각을, 2부에서는 법원이라는 조직을 통해 깨달은 한국 사회의 단면과 판사 이전에 조직인인 판사의 입장을 담고 있다. 동시에 충분히 세상에 대해 알고 고민하기 전에 단지 시험 몇 개의 성적만으로 젊고 미숙한 채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한 판사의 세상을 발견해 가는 여정을 보여 준다.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정말 법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국민과 권력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지금,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담은 그의 따뜻한 시선이 냉소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 준다.
죄와 죄인 이전에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그런 때 만나는 이들의 영향은 강력하다. 그가 나를 벼랑 끝으로 밀거나 그렇지 않을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 개별 존재의 자유와 생사까지 좌우하는 판사라는 존재는 인간이 벼랑 끝에서 만나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이러한 판사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합리성과 공정성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속설이 실제 법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곳이 법정이라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업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임을 다하는, 인간적이면서 상식적인 판사들을 소개한다.
공업용 본드를 값싼 마약 삼아 흡입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특정 업체에 찾아가 공업용 본드를 만들지도, 팔지도 말라고 영업을 방해하는 판사, 어쩌면 단 한 번도 어른에게 혼난 적 없는 일진들에게 안타까움과 애정 어린 호통을 치는 판사, 집단 폭행 후 자포자기한 삶을 살고 있던 소녀 절도범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다’라는 구호를 복창시키는 판사… 이처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판사들을 소개하면서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한 이유로 직접 사과를 한 자신의 일화도 풀어 놓는다.
“피고인, 평생 그런 식으로 없는 친구나 친척을 내세워 범행을 반복했는데 또 그 이야기입니까? 교도소 콩밥도 국민의 혈세로 마련하는 겁니다.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
그런데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공손하게 대답하던 피고인이 마지막 한마디를 듣더니 고개를 번쩍 들며 저를 쏘아 보는 겁니다.
“판사님, 콩밥도 아깝다니요? 저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닙니까? 사람도 아닙니까?”
저는 움찔했습니다. 그래도 겉으론 태연한 척하며 일단 재판을 다음 기일로 속행시키고 법정을 나왔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습니다. 제가 무슨 권리로 남을 그렇게 모욕할 수 있겠습니까. 법복을 벗으면 저는 그냥 30대 초반의 젊은이일 뿐이었습니다. 저라는 개인에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하여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라는 직책이었기에 그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법정에서 저보다 20년은 더 살아 온 분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내뱉은 것입니다. 더 큰 잘못은 법관인 제가 선입견을 가지고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무시한 것입니다. 전과자든, 상습범이든, 일단 무죄로 추정되어야 하고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명색이 법관인 제가 수사기록을 예습하고 와서는 피고인의 말을 듣기도 전에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_ ‘막말 판사의 고백’ 중에서 (24~25쪽)
누구도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지도, 개입을 하지도 않는 시대에 인간에 대한 치열한 관심과 애정으로 적극적인 교화를 돕는 판사들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저자는 앞으로도 이렇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재판하기 위해서는 판사에게 ‘야근할 시간이 없다’ 고 말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분들이 모인 어떤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법관은 10년 동안 TV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하시더라. 하루도 빠짐없이 재판 기록을 읽고, 짬이 나면 대법원 판례까지 꼼꼼히 읽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 민법을 비롯한 주요 법률의 법조문을 읽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실력을 인정하는 대가가 되셨다.’
그런데 반응이 영 의외더군요. 다들 별 반응이 없더니 한 명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난 솔직히 그런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지 않다.” _ ‘재판하기 위해서는 야근할 시간이 없다’ 중에서 (222~224쪽)
학업 성적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법관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새벽까지 재판하기도 하고, 1천 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을 쓰기도 하고, 과로로 쓰러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정작 사법 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법관들이 동시대인들과 공감하고 있는지 자체에 의문이 생길 때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관들이 국민들과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하려면 일보다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TV를 안 보기는커녕 가능하다면 신문도 편향되지 않게 서로 다른 입장의 신문을 같이 보고, 인터넷 여론의 흐름도 살피고, 세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뿐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 관한 시대정신을 담은 좋은 책들도 읽고, 무엇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판사도 겨우 건전한 상식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양형 문제, 사형제도, 다문화정책, 진보와 보수, 복지와 안보…
선례와 기준으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최근 판사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극단의 가치가 충돌하는 사건 판결이 국민감정과 큰 괴리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양형에 대한 문제는 사법부의 존재 의미를 물을 만큼 뜨거운 사안으로 대두됐고 이는 사법부의 신뢰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양형 문제가 반복적으로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살인죄의 양형이 모든 범죄 양형의 암묵적인 기준점 역할을 해 왔고, 살인죄에 대한 징역 13년 정도를 선고하는 종전 양형 관행이 다른 범죄의 양형을 순차적으로 낮추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범죄 등의 양형이 너무 낮아 심각한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여론을 바탕으로 2010년에는 형법이 개정되어 유기징역형의 상한이 30년으로 대폭 수정되었으나 법 개정 이후에도 선고 형량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수십 년 동안 형성되어 온 형량의 범위를 급격히 변경하는 것에 대한 법관들의 부담과 항소심의 존재 때문이다.
넓은 관할의 여러 재판부 판결을 동시에 검토하는 항소심에서 특정 재판부의 형량이 높은 경향을 보이면 그 재판부에서 재판받은 피고인만 불이익을 입게 되므로 형량을 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재판부도 항소심의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법관에게 주어진 양형 재량의 범위가 넓은 중죄라면 이를 스스로 좁히는 신중함이 자칫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무거운 사명을 회피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징역 5년에서 30년, 무기징역형, 사형입니다. 형의 감경이나 집행유예도 가능하니 사실상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국민을 대표한 입법부가 이렇게 예외적으로 넓은 양형 재량을 법관에게 부여한 이유는 살인죄에는 단지 사람을 살해했다는 결과만으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는 넓은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살인 이상의 잔인한 영혼파괴를 반복해 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양 사건처럼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가 아닌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사건부터 21명의 노인과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까지 동일한 살인사건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사람 1명을 죽였느냐 2명을 죽였느냐 등 단순한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1명을 죽였어도 다른 요소들을 치열하게 고민한 후, 비난의 가능성이 높아 무거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사건에 관하여는 징역 20년, 30년, 아니 그 이상도 선고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_ ‘사람 목숨의 값’ 중에서 (88~89쪽)
그러면서 당연히 국민들의 분노와 엄벌 여론을 인민재판식으로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경계하기만 할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법이론적으로도 형사책임의 본질은 비난 가능성이고, 한 사회공동체나 법공동체가 여러 범죄 중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유독 높은 비난을 가한다는 것은 사회가 평가하는 그 행위의 비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요소를 법원이 중시해 온 ‘유족과의 합의’보다 덜 중요하게 여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이 법관에게 부여한 양형의 재량에 대하여 스스로 삼가고 자의를 막기 위해 최대한 편차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재량을 두려워하여 다른 것을 다르다고 선언하지 못하고 선례와 기준으로 도피하여도 안 될 것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사법 불신에 대해 억울해만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사회적인 관심을 받는 사건에서 법리적인 이유로 일반 상식과는 다소 다를 수 있는 결론이 선고될 경우, 법이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지 말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생각이 들 만큼 친절하게, 표현도 심사숙고하여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날 심각한 사법 불신을 낳은 이유 중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 대한 오해인데, 언론이나 대중들이 법에 무지하여 오해한다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먼저 오해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판결문의 독자를 상급심 법원이나 변호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반 국민이라고 생각하면서 설득하려는 자세로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_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중에서 (208쪽)
마지막으로 그는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했던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여러 건의 국민참여재판 참여 결과, 기사 댓글의 반응과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양형 의견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배심원들이 법관의 의견과 전혀 다른 중형을 주장하는 경우도 없었고, 오히려 예상보다 관대한 처벌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심원들에 따르면 언론보도가 아닌 피고인을 직접 보고 범행 동기와 전후 사정을 들을 때의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연령이 높고 사회경험이 많을수록 관대한 의견을 내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만큼 나이가 들수록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실수 가능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 아닌가 하고 저자는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추악한 얼굴을 맞닥뜨리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판사는 매일 인간의 가장 어둡고, 추악하고, 무력한 모습을 대면하는 직업이다. 응급실 의사처럼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피맺힌 하소연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이런 하소연들만 들으며 살다 보면 인간에 대한 절망과 냉소에 빠지기 십상이다. 부조리와 비극을 바라보면서도 정작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다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일이 많다. 또 최선을 다해도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산처럼 쌓인 업무에 그마저 최선을 다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문유석은 이러한 판사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오판으로 남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살겠다는 자신감이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 책에서 본 추상적인 인간과 실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되었다고 소회한다.
갈수록 재판을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감히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어느 하나 없는데도, 맡은 소명은 주어진 증거의 테두리 내에서 판단하여 입증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피하여 가지 말고 명확히 정의를 선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죄를 치열하게 주장하는 사건이라고 하여 재판 결과 유죄를 인정하면서 적당히 형량을 낮추어 타협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오판으로 누군가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죄는 무간지옥에서 영원히 속죄할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늘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법정에 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_ ‘사람 목숨의 값’ 중에서 (90쪽)
이 책의 제목인 ‘판사유감’은 이러한 그의 경험을 통하여, 판사로서 재판을 하며 느낀 것들이 있다, 판사에게도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는 의미의 ‘判事有感’과 이 사회의 국민이 판사에 대하여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잘 알기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뜻, 즉 판사에 대한 유감의 의미의 ‘判事遺憾’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판사로서의 그의 고백을 통해 판사들은 물론 우리 모두가 한동안 관심은 두지 않고 책임만 물었던 ‘판사’라는 직업과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추천의 글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고, 우아하고, 깨끗한 것만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 우리의 일상은 분노하고, 좌절하며, 슬퍼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문유석 판사의 글을 읽어 봐야 한다. 그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얼굴을 맞닥뜨리면서도 선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참 좋은 글을 읽었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그의 글들을 읽으며 한동안 밀쳐놓았던 ‘판사’라는 직업,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판사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받아든 느낌. 판사들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고맙고 치유적인 숙제다.
―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마인드프리즘 대표)
어느 조촐한 저녁 자리에서 처음으로 문 선배에게 지금 우리나라의 사법계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냐는 조금 추상적이며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욕심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거야. 지금 우리에겐 그게 제일 필요해.” 궁금하다. “학생 시절에 왜 판사가 되고 싶으셨어요?” 책 속에 나오는 어느 여고생이 던진 질문의 답이.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묻고 싶어졌다. “문 선배, 지금 당신은 어떤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
― 유희열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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