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에게 간다
단 한 번의 첫 사랑에 마음을 여는 방법을 잊어버린 여자 민하율.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세컨드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고 산 정현원.
두 사람에게 결혼은 또 다른 기회였다.
발췌글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율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서로 말 없이 와인만 홀짝이다 보니 오랜 시간 정적이 흐른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거예요?”
제 말에도 반응이 없는 그를 향해 하율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면 내가 정현원의 진짜 아내이길 바라는 거예요?”
솔직히 그녀는 마지막 질문이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는 것이라면 그가 싫을 것 같았다.
“날 사랑할 것 같아요? 아니…… 나와 만들고 싶다던 평범한 가정…….”
하율은 굳이 먼저 말을 꺼낸 자신을 죽어라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녀는 열심히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지 않게 이 재미없는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것과 마주쳤다.
“진짜 아내. 평범한 가정. 내가 그걸 바란다면, 나는 무엇을 주려 노력하면 돼?”
남자의 시선에 담긴 진심을 처음으로 보았다. 하율은 그런 그의 모습에 놀랐다.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떨렸고, 놀랐다.
“진심.”
하율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리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좋아.”
그의 말과 동시에 바닥을 짚고 있던 제 손 위로 그의 손이 덮어졌다. 그 온기와 그의 행동에 놀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녀에게 현원은 아직 재미없고 무뚝뚝한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조금 다정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남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조금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제주의 바람과 함께 너울거리며 흩날렸다.
어느새 잡은 손이 깍지를 끼고 맞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 잔의 와인을 더 비우는 동안 어느새 한 뼘 더 가까워진 그와 자신이었다.
그렇게 어느새 하율은 조금 열기를 띠는 그의 시선을 받았다.
아, 이런 남자구나…….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하율의 머릿속 현원이 다른 사람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조금 은근한 열기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민하율이 참 많이 놀아서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곤 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전부 제가 들을 수 없는 아래에서 맴돌았다.
하율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에게 보일 수 없는 곳까지 전부 보여지는 중이었다. 그게 부부였고, 그게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다운 짓이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이와 이런 소소한 행복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눈앞 가득 들어온 현원의 모습에 하율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가 든든하게 제 앞을 버티고 있어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가질 수 없던 것은 꿈이었고, 그 꿈은 아주 나쁜 종류의 것이었다.
그걸 깨닫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흘렀더란다.
그 꿈에서 깨어나고 나니 민하율이 너무 형편없는 여자였었다.
그러니 그 좋지 못한 가족의 안에서 반듯하게 자란 현원에게 적어도 그가 바라는 좋은 아내가 돼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하율은 현원의 손길에 달뜬 숨소리를 뱉어내고 말았다.
참았던 숨소리에 그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 역시 촘촘히 느껴질 만큼.
하율의 온 신경은 현원을 향했다.
하연이 말했던 혼수……. 지금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달은 밝았고, 그는 너무 건강했으며, 그녀 역시 그가 주는 이 낯선 기분이 제법 괜찮았다.
그러니 하연이 말했던 혼수.
지금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지금 만들어볼 참이었다. 그를 재촉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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