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지하련의 생애는 일관되고 총체적인 자료에 의해 기록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당대 문인들의 기록과 회고록, 카프 비평가이자 시인인 남편 임화(林和)의 생애에 관한 연구 자료, 사소설 성격을 지닌 지하련 소설 등에 의존해 파편적으로 그 삶의 궤적을 좇아볼 수 있을 뿐이다.
지하련(池河連)은 필명이며 호적상의 본명은 이숙희(李淑嬉)다. 소설을 쓰기 전 이현욱(李現郁)이란 이름으로 문단 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하련은 1912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탄생, 마산에서 성장기를 보냈으며 일본 도쿄 쇼와고녀(昭和高女), 도쿄여자경제전문학교(東京女子經濟專門學校)에서 수학했으나, 졸업은 못했다.
작가로서 그의 이력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임화와의 만남과 결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지주이면서도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으로 지하련은 일찍이 사회주의 사상에 눈을 떴고, 이런 배경에서 임화와는 같은 길을 가는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으로 미래를 기약하게 되었던 것이다. 임화는 이미 전처 소생의 자식이 있는 기혼자였지만 이혼 후 1936년 지하련과 재혼했다.
임화와의 사이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고향에서 단란한 가정의 아내로 살아가던 지하련이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남편 임화로 인해 형성된 문학적 분위기와 서정주, 최정희 등 문인들과의 교류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1938년 상경 후 임화의 주위에 몰린 많은 문인들과 접촉하면서 지하련은 문학적 자극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하련은 폐결핵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친정이 있는 마산으로 내려가 투병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병, 외로움과 싸우며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백철의 추천을 받아 드디어 1940년 12월 (문장)에 ‘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단편 (결별)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문단에 나올 때부터 사적인 배경과 재능, 미모로 많은 시선을 모았던 지하련은 1941년 마산 요양 시절의 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 (체향초(滯鄕抄))를 필두로 (가을), (종매(從妹)), (양(羊))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열정적으로 소설 쓰기에 몰두한다. 지하련은 해방 후 임화가 결성한 ‘조선문학동맹’(1946년 2월 이후의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서울 지부의 소설부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대표작 (도정)을 발표했다. 그는 소설 외에도 (일기)((여성), 1940. 10), (소감)((춘추), 1941. 6), (겨울이 가거들랑)((조광), 1942. 2), (회갑)((신세대), 1942. 9) 등의 수필과(어느 야속한 동포가 있어)((학병), 1946. 2) 등의 시를 남겼다.
그러나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로 자리를 굳혀가던 지하련은 1947년 좌파 문인에 대한 검거 로 임화가 월북한 뒤 뒤따라 북으로 가게 된다. 1948년에 지하련의 유일한 창작소설집 ≪도정≫(백양당)이 출판되었으며, 정황상 지하련은 그 이전에 월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측 자료에 의하면 이후 1953년 남로당 숙청으로 임화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만주 땅에서 전해 들은 지하련이 남편의 주검을 찾기 위해 평양 시내를 헤매 다니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지하련의 사망 연도와 관련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평북 희천 근처 교화소에 수용된 후 1960년 초에 병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