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비극
지방소멸, 고령화, 청년이동, 인구감소-
그러나 진짜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2021년 (흑뢰성)으로 나오키상을 비롯해 추리소설 9관왕을 달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제왕으로 우뚝 선 요네자와 호노부. (빙과)를 위시한 ‘고전부 시리즈’ 등 일상의 미스터리로 잘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역사와 판타지, 경찰물 등을 미스터리에 접목하며 다양한 시도를 선보여 왔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이번에는 현대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본격 추리소설의 틀에 담은 걸작 (I의 비극)으로 한국 독자들을 찾는다.
(I의 비극)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드물게 선보이는 사회파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 소도시를 부흥시키려는 공무원과 희망을 안고 이주해 온 주민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는 필치로 담아내 2019년 ‘주간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4위에 선정되었다.
소멸 위기의 마을을 되살릴 ‘I턴 프로젝트’
요네자와 호노부가 그리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극치!
모든 주민이 고령으로 사망하거나 요양 센터로 떠나고, 마지막 남은 주민까지 자살을 시도한 후 6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게 된 유령 마을 ‘미노이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새롭게 취임한 시장은 타 지역에서 이사 오는 주민을 지원하자는 취지의 ‘I턴 프로젝트’를 시작, ‘소생과’라는 부서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가지만, 소생과 직원들은 이것을 일종의 좌천으로 여긴다. 공무원인 만간지는 다시 출세 가도로 돌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고자 하고, 도로 정비부터 제설작업, 통학버스 준비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마을에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가는데--. 과연 I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정말로 우연이었을까?
(I의 비극)은 공무원인 만간지가 사람들이 떠나간 이유를 하나씩 파헤치는 연작 단편집의 구성을 취한다. 우연처럼 보였던 것이 우연이 아니고, 호의로 보인 것이 호의가 아님을 깨달은 순간, 만간지는 놀랍고도 씁쓸한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 편 한 편의 단편은 본격 추리이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는 순간 거대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적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고령화, 저출생, 일자리 감소, 청년이동, 인구감소--. (I의 비극) 속 일본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오늘,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처지와 갈등, 미스터리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국보다 먼저 이 같은 문제를 겪은 일본의 각 지방자치단체는 청년 인구를 유입시키기 위해 빈집을 고쳐 싼값에 임대하는 한편 일자리를 찾아주고 이주비를 지원하는 일명 ‘I턴 프로젝트’를 시행해 왔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을 ‘I턴’이라고 부른다.) 노력이 결실을 맺어 활성화된 도시도 있지만, 대부분 막대한 세금만 투입된 채 실패로 끝난 것이 현실이다. 실패 이유는 다양하다. 여전히 부족한 일자리, 불편한 교통, 열악한 의료, 문화 시설의 부재--. 이 같은 지방도시의 씁쓸한 현실을 요네자와 호노부는 놀랍게도 ‘미스터리’라는 틀에 담았다.
\'미스터리 작가로서 한 번은 폐쇄된 땅을 무대로 삼고 싶었다.\'
미스터리 작가와 독자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창조하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I의 비극)을 집필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스터리 작가로서 한 번은 ‘폐쇄된 땅’을 무대로 삼아, 미스터리의 이상향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기술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현대, 미스터리 작가들은 과거의 작가들보다 많은 제약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은 마을 ‘미노이시’는 모두가 떠난 채 방치된, 순수한 미스터리 해결이 가능한 공간이다. 게다가 주민 전원이 새롭게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독자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원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추리소설 작가에게나 공정한 두뇌 싸움을 원하는 독자에게나 더없이 완벽한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한 것이 단순히 미스터리인 것은 아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일본 내에서 있었던 ‘굳이 소도시를 되살려야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목소리에 대해서도 작가는 지적한다.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가운데, 굳이 외딴 지방에 계속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하는 물음에 반박하기 힘든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결코 그 논의에 동의할 수 없는 마음도 있다. 살아가는 것은 본래 합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렇게 오늘날 작가들이 직면한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주제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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