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
2029년, 신종 조류독감의 창궐로 새로운 펜데믹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이미 코로나19를 겪은 인류는 너무 잘 훈련되어 있었다.
백신패스와 더불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완벽한 사회 통제 시스템이 발동한다.
정부는 공중 보건을 명분으로 국민의 모든 권리를 제한하고 통제한다.
의문의 권력 집단은 사회 통제 시스템을 암암리에 장악해 나간다.
그들은 완벽한 통제사회의 영속을 통해, 새로운 전체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누군가 그 불길한 징조를 감지하고 그들의 정체를 추적하고 폭로하기 시작한다.
류광호의 장편소설 [2029』는 새로운 펜데믹을 맞이한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곧 도래할 디스토피아의 전초적 현상을 마치 묵시록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령 조지 오웰의 [1984』가 인류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를 가장 소름끼치는 형태로 묘사해 인류가 상정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원형이 되었다. [1984』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면, 흥미롭게도 [2029』는 곧 도래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예언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마치 지진 기록계가 여진을 감지해 곧 다가올 지진과 해일을 예측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진만으로도 곧 엄청난 재앙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다.
[2029』는 코로나19에 이어 새로운 펜데믹을 맞이한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때는 2028년, 신종 조류 독감이 전 세계에 창궐한다. 이미 코로나를 통해 잘 훈련된 인류는 이를 통해 이미 체득했던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재’가동한다. 이에 독감 백신이 개발되자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접종이 시작된다. 정부는 백신 접종을 강제하지 않았지만 백신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기에 접종률은 급속도로 확산된다. 한편 백신패스의 도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접종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대중은 독감의 공포와 더불어 백신의 부작용도 두려워했지만, 접종하지 않으면 사회 신용 점수가 하락하고 일상과 직장 생활은 물론 사회-경제적 생활도 제한된다는 걸 알았기에 백신 접종을 택하게 된다.
주인공 유혁은 새로운 백신과 정부의 보건 정책에 의심과 반발을 갖기 시작한다. 그 발단은 자신의 친구였던 정원이 백신 접종 후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의 비극을 파헤치다 백신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이 무려 2,800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그는 백신과 보건 정책을 계속해서 파헤치다가 정부가 시행하는 보건 정책을 공고히 하기 위해 도입하는 기술과 제도들이 백신의 부작용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가 주목하는 건 AI와 백신패스, 디지털 아이디, 사회신용제도, 그리고 전자화폐(CBDC)였다. 인류의 편의를 위해 발전한 이 다섯 가지의 기술과 제도들이 오히려 인류를 완벽하게 옭아맬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된다.
고도로 발달된 AI는 거리의 CCTV와 결합되어 국민을 실시간으로 감시했고, 로봇개와 드론에도 도입되어 주기적 거리 순찰을 통해 마스크 미착용자를 선별해내 위협적인 경고를 가했다. 백신패스는 백신 접종 유무를 판별해 공공 시설 및 상업 시설 이용을 단계적으로 제한했다.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디지털 아이디를 도입한다. 이는 신체에 심는 디지털 신분증으로 정부의 명목은 행정의 편의를 높혀 보건 정책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었지만, 반대로 개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보로 파악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다. 이미 도입된 사회신용제도는 백신 접종 여부등의 사회 공공 정책의 순응 여부에 따라 평가되어 점수가 낮아질수록 대출의 규제를 받는다거나 거주 이전과 구인 구직의 제한, 심한 경우 인터넷 쇼핑의 제한까지 당했다. 더불어 정부는 전자화폐(CBDC)의 도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금융실명제보다 더, 아니 완벽하게 투명한 경제 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모든 자산은 물론 지출입이 디지털 정보로 남는 것이다. 세금 탈세와 체납도 불가능했다. 전자화폐와 사회신용제도, 그리고 백신패스의 결합은 한 개인을 사회-경제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제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유혁은 백신 접종과 더불어 불거지는 문제와 고도로 체계화되며 발전하는 보건 정책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는 백신 접종도 거부하고 사명감과 정의감만을 갖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 돌입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영상 공유 플렛폼인 ‘스쿠브’였다. 그는 하루하루 백신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추이를 조사하고, 디지털 아이디와 사회신용평가제도, 그리고 전자화폐의 동향을 폐단을 파악하며 자료를 정리해 영상으로 만들어 유포하기 시작한다. 세상은 그가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에 조금씩 귀 기울이게 되고 채널 구독자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는 열성 구독자들과 직접 만나 현안에 대한 깊은 토론을 하며 다가올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고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논의하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세상에 울림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유혁의 영상과 채널은 보건 정책 위반이라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제제와 정치를 받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미행하는 이들마저 발견한다. 그저 혼자서 묵묵히 진실을 파헤치고 있었지만, 점점 거대한 어둠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과연 그는 세상의 진실을 계속해서 전할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 예측한 완벽한 통제사회, 영속 가능한 전체주의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세계였다. 하지만 류광호의 [2029』에서는 그것이 가능해진 시대가 도래했음을 진단하고 있다. 인류의 눈부신 발전과 사회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이룩한 결과인 AI, 백신패스, 디지털 아이디, 사회신용제도, 그리고 전자화폐(CBDC)가 되려 인류를 아주 완벽하게 옭아맬 수 있는 장치라고 보는 것이다. 류광호가 전하는 묵시록은 조지 오웰을 너머선 포스트 전체주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이제 보다 새로운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1984를 지나 2029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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