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달의 제단》 《설이》의 작가 심윤경의 장편소설 『영원한 유산』. 이 소설은 저자의 오래된 앨범 속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의 작가와 할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 속 낯선 건물, 크고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말이다. 지금은 사라진 그 건물은 알고 보니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은 것으로, 그의 아호를 따 ‘벽수산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해방 후 국유화되어 언커크(UNCURK)라 불렸으나 1973년 봄 철거되어 놀랍도록 빠르게 잊혔다. 사진 속 벽수산장을 인지한 2012년 이후 8년간 작가를 사로잡았던 대저택의 존속과 소멸. 여기에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며 완전히 새로운 또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잊힌 것과 존재하는 것, 오래된 소명과 새로운 운명을 품은 소설로.
배경은 해방 후 20년이 지난 1966년, 주무대는 옥인동 ‘벽수산장’이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아들 이해동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언커크UNCURK)에서 통역 비서로 일하고 있다. 현재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대저택 벽수산장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지은 별장이었다. 달러로 월급을 받으며 ‘나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생각하는 소시민 청년 이해동 앞에 어느 날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난다. 윤원섭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뒤 국제기구로 쓰이는 벽수산장으로 돌아와 아무도 몰랐던 비밀의 방을 찾아내며 언커크에 파견 온 외교관들에게 저택의 옛 주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기세등등해진 윤원섭의 뻔뻔한 말들을 통역하며 이해동의 삶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이해동에게는 적산(敵産)이며 윤원섭에게는 유산(遺産)인 저택 벽수산장이 그 모든 것을 굽어보는 가운데, 상반된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두 인물의 전혀 다른 삶의 행보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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