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왜 우리는 운동을 하려다가 늘 망하는가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앞길을 막는 것들은 무엇일까
운동 못하는 스포츠기자가 찾아나선 한국 여자들의 일상과 현실 속 운동의 의미들
이 책은 개인적인 성공담이나 관찰기가 아니다. 실용적인 운동 팁도 들어 있지 않다.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는 여성 스포츠기자의 분석과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동시대 한국 여자들의 운동 현실과 대안을 명쾌하고 경쾌하게 풀어낸 보고서다. 건강한 일상과 자유로운 몸을 누리고 싶은 여자들이라면, 크게 공감할 만한 지금 우리의 운동 이야기들을 담았다.
‘왜 나는 운동을 하기만 하면 망하는 걸까.’ 신체능력 최상의 선수들을 상대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운동을 잘해본 적 없다는 저자의 사적인 경험과 고민에서 이 책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찾아가는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은 보통 여자들의 현실로 향하고,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른다. 이 책의 1부가 바로 그 탐구의 내용이다. 저자는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석하고 인용하면서 왜 지금 한국 여자들은 제대로 운동을 배울 수 없었는지를 여성의 생애주기, 학교 체육, 돌봄 노동 등의 키워드로 살펴본다. 또한 전문 기자답게 스포츠계의 여성 이슈들을 소개하고 프로스포츠와 산업 속 차별과 편견을 짚어낸다. 그래서 결국 여자들의 운동이란 무엇이어야 하며 어떻게 접근해야 좋은 것인지, 대안을 찾고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2부에서는 운동에 관한 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이끌어낸다. 운동이 너무나 싫고, 운동을 못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도 거르지 않았지만, 이 책의 기둥이자 백미이기도 한 본격적인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는 다양한 여자들 이야기를 담았다. 체육교사, 운동부 학생, 직장인 선수, 사회인 야구팀, 30, 40대부터 70대까지의 열혈 동호인, 국가대표 선수 등이 보여주는 ‘운동과 함께하는 삶’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재미있는 것투성이”인 동시에 “힘들어야 대가가 오”는 “고통” 그 자체인 운동의 의미가 여자들의 진짜 목소리로 전달된다. 여기에,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설명하는 현상과 정책, 그리고 팟캐스트 기획자와 나눈 여성의 몸과 운동에 대한 진지하고 솔직한 수다가 이 책에 무게감을 더한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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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미국 애틀랜타에 거주하고 있는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언니, 터울 많이 지는 둘째 낳고 나니까 너무 힘들어. 우리 동네 짐에는 엄마들이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맡아주는데, 가끔은 거기에 애 맡겨놓고 운동기구 위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니까.”
“애를 맡긴다고? 운동하는 동안 애를 봐준다는 거야? 민폐라고 생각 안 하고?”
너무 놀라서 괴성을 지르는 나를 그 후배는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랬다. 미국은 YMCA 같은 동네 보급형 체육시설에서 일정 비용만 내면 엄마들이 운동하는 동안 활용할 수 있는 베이비시터 서비스가 있었다. 엄마가 운동하는 동안 아기들이 노는 시설이 별도로 있고, 심지어 영유아용과 어린이용이 따로 준비돼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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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축구팀 오겠다고 하는 여학생들도 있나요?
전해림: 그럼요. 특히 축구팀에 잘하는 여자 선배가 있으면 그 학생을 보고 들어오는 후배들이 많고요. 여자애들이 재미있게 축구 연습하는 걸 보고 나도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은경: 그래도 아직 축구는 남자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학생들이 축구 연습하면 남학생들이 놀리거나 하지 않나요?
전해림: 맞아요. 그런 거 있어요. 축구가 여자 운동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학생들에게 아예 없지는 않아요. 여자애들이 축구 하면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친구들이 “너는 예쁘게 생겼는데 왜 축구해?”라는 말이에요.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하고 많이 하는 걸 학생들이 보니까 자연스럽게 ‘운동에 남녀 구분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이건 누구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운동이야, 이런 걸 계속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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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정말로 운동이 재미있나요? 힘들거나 귀찮다는 생각이 한 번도 안 들었고요?
정지은: 네. 힘들지 않아요. 귀찮지 않아요. 아무리 멀리서 해도 운동은 다 할 수 있어요. 왜 그렇잖아요.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요, 몸살 나서 누워 있다가도 친구한테 전화 와서 ‘오늘 멤버 좋은데 너 안 나올래?’ 그러면 당장 쓰러질 것 같아도 택시 잡아타고 나가잖아요. 그런 거랑 똑같아요. 지금 우리 라크로스 대표팀 하는 사람들도 거의 자기 일을 갖고 있고 대표팀은 부수적인 개념이지만 모두들 힘들어도 나오고, 감기 들어도 나오고 그래요. 운동이 삶의 즐거움인데요? 하다보면 실력이 느는 것도 보이고, 팀 운동이다보니까 서로 호흡이 맞을 때의 짜릿함도 있고. 재미있는 것투성이에요, 운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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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프로 스포츠 안에서 젠더와 관련한 또 다른 연구 주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남상우: 이른바 ‘엄마 리더십’이죠. 저번 시즌 프로배구에서 우승한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잘 아실 거예요. 그분의 기사를 찾아보면 꼭 ‘엄마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정작 박감독은 그 말을 싫어한다고 하는데도 그래요. 도대체가 엄마 리더십이 뭘까요. 여성이라 부드럽고 따뜻하게 선수들을 보듬고 소통한다는 건데, 소통 안 하는 리더십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지도자와 관련한 리더십 기사를 보면 명확한 데이터나 자료에 근거한 게 아니라 기자들이 어떤 ‘느낌적인 느낌’으로 만든 단어를 붙여서 만들어낸 기사가 대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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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야구 할 때 약간 쑥스러움 같은 것도 아직 있나요?
김미숙: 있죠, 당연히. 나이를 무시 못 해요. 한 번, 두 번 올 때는 되게 힘들고 어색했어요. 어린 친구들은 운동장 다섯 바퀴 뛰어도 안 지치는데 나는 고생도 많이 했고.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돼요. 그래도 그 시간이 지나니까 편하더라고요. 이런 팀이 존재해서 너무 고마워요. 팬으로서 야구를 좋아하는데, 누구라도 와서 해볼 수 있으니까요. 캐치볼조차 안 해보고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도 연습하면 다 돼요. 야구가 정말 좋은 운동이에요. 일단 너무 재미있잖아요. 30대, 40대, 50대까지 다 할 수 있어요. 운동 하면 사회적인 비용도 줄어드는 거예요.야구를 꾸준히 일주일에 두 시간만 해봐요. 병원 갈 일이 확 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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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운동의 재미라는 게, 어떻게 보면 운동으로 인해 성취감을 느끼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인데요. 사실 운동에 소질이 없어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운동이라는 움직임 자체가 고통 아닌가요?
이순자: 맞아요.(웃음) 운동은 곧 고통이에요. 저도 그걸 느껴요. 휴가 때 푹 쉬다가 운동하면 고통스럽고 힘들죠. 그런데 그 고통 속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 고통이 줄어들어요. 저는 목표치를 세울 때 너무 멀리 안 갔어요. 만약에 제가 고등학교 때 카누 시작하면서 그때 당장 ‘올림픽 메달이 목표’라고 생각했으면 2년도 못 채우고 관뒀을 거예요. 차근차근 하나씩 ‘배 탈 때 중심을 잘 잡는 것’ ‘학교 대표가 되는 것’ ‘전국체전 입상’ ‘전국체전 우승’ ‘국가대표 되기’ ‘국가대표로 2년 버티기’ 이렇게 갔어요. 내 눈앞에서 당장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그걸 하나하나 완성해가야 다음 단계가 보여요. 그게 재미예요. 저도 그게 축적돼서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그래서 고통이 저를 흥분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운동할 때 느끼는 고통, 그 이후에 생기는 결과물, 긴장감 이런 게 흥분돼요. 힘들지 않으면 운동 효과가 없어요. 힘들어야 운동이고, 힘들어야 대가가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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