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 듯 눈물인 듯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한국인이 사랑한 시, 김춘수 시인의 <꽃> 수록!
20년에 걸쳐 완성된 두 거장의 예술적 실험
고(故) 김춘수 시인과 최용대 화백이 만들어 낸 새로운 세계로의 환대
20년 전, 김춘수 시인은 시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이해해줄 화가를 찾아가 함께 작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그 제안에 화가는 ‘왜 하필 나냐’고 되물었다. 시인은 그 당돌한 질문에 지긋이 웃으며 \'무엇보다 내 시와 잘 맞아.\'라고 대답했다. 새로운 시적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많은 시 중 단연 눈에 띄는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꽃>은 김춘수 시의 초기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꽃’과 ‘언어’의 관계다. 꽃의 존재 또는 세계의 존재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념을 담고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사물)이 되는 그 과정과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인식론적 세계와 예술적 실험의 결합이 담긴 (꽃인 듯 눈물인 듯)은 20년 전 두 거장의 혼이 담긴 시화집을 재발간한 책이다. 이 시집에는 문학평론가 강경희 평론가와 김춘수 시인의 손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김현중 작가의 김춘수 시인을 향한 애틋함 또한 담겨 있다. 2005년, 그 실험이 세상에 내보일 당시의 여운을 기억하며 2024년 다시 한번 새로운 탄생을 기약한다.
\'故 김춘수 시인의 20주기를 추모하며\'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다시 한번 선보이는 ‘미학적 실험’
인간 존재의 비극과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착실한 단초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 <분수> 부분
\'김춘수 시의 매력은 이해가 없어도 수용되고 해석이 없어도 폐부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중략) 김춘수는 언어 밖을 지향하며 의미에 포획되지 않는 비상을 꿈꾸는 시인이다. 언어이며 음악이 될 수 있는 예술, 문자이며 그림이 될 수 있는 세계, 소리이자 향기가 되는 차원, 땅에 떨어지는 눈물이자 빛으로 날아가는 동경. 지정과 경계로 구획되지 않는 자유의 지대를 시인은 활보한다. 시인 자신은 이를 ‘무의미시’라고 명명했다.\'
- 강경희, 문학평론 <숲에 서 있는 희맑은, 희맑은 하늘 소년>에서
김춘수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이별, 그리움이자 상실이란 \'안타까운 눈짓\'(<분수>)이다. 어째서인가.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는 왜 우리가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분수>)에 대한 고뇌다.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분수>)에 대한 명명이다.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분수>)지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곧 \'선연한 무지개로\'(<분수>) 다시 솟아난다. 다시 솟아나는 탄생에도 문득 고독한 자아와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시 세계가 전하고자 하는 날카롭지만 고요한, 고독하지만 푸른 눈빛은 곧 독자들의 가슴에 뚜렷한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삶의 고통을 가로지르는 과묵한 시선, 피동적인 움직임
문학과 미술의 영감으로 쌓아 올리는 현대 예술, 그 너머
\'인용된 문자 텍스트는 원문에서의 의미론적 측면과 함께, 그 자체가 말하자면 모든 상형문자와 그림문자가 그렇듯 일정하게는 그 의미와는 무관한 일종의 조형적인 효과 역시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나무 이미지와 문자 텍스트에서의 의미가 서로 중첩되거나 충돌하는 것으로부터 제3의 의미를 축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초의 의미를 재맥락화하
는 과정을 통해 나무의 이미지에서도 그리고 문자 텍스트에도 속하지 않는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 고충환, 미술평론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존재론>에서
김춘수 시인의 초기작을 포함해 53편에 이르는 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시화집 (꽃인 듯 눈물인 듯)은 월간미술 평론가 44인이 선정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작가 100인 중 한 명인 최용대 화가의 작품이 어우러져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 최용대는 그동안 문자 텍스트가 도입된 회화(평면, 입체)와 설치 작업 등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제시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흑과 백, 원색, 이미지와 문자 텍스트 등의 대비를 통해 시인과 미술가의 언어를 뚜렷이 보여 준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의미가 중첩되고 충돌하면서 또 하나의 예술적 확장을 기다린다. 그 의미는 바로 김춘수 시인과 최용대 화가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시 세계이자 그림 세계이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이자 결합이 현대 예술에서의 도전적 실험이었던 셈이다. (꽃인 듯 눈물인 듯)을 통해 그 새로운 영감을 만나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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