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일 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생의 고요한 격려를 느껴라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윤기, 최인호가 극찬한 감동의 기록!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미친 듯이, 한 번은 찬찬히.
죽음을 유예시키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이라는 것을,
비슷한 과거가 있는 나는 이 책에서 다시 확인했다.
- 이윤기(소설가, 순천향대 명예교수)
목차
작가의 말 생(生)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성에에 새긴 이름
내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운항 실습이 아니라고. 연습 없이 태어나듯 생존에는 실습이 없다고.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채로 몸을 내던졌다. 신체가 허공에 뜬 순간과 그대로 차가운 수면을 뚫던 순간이 구분이 안 됐다. 살아야 했고 급박했다.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우리 삶에 꽃이 절실하다면 성에에 그려내기라도 해야 했다.
나를 방생해준 자연
사실 희망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거짓말일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부질없는 희망을 접어버리는 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온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선택할 일은 오직 하나다.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도록 사력을 다하는 것.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죽는 게 아니다. 가망이 없어서 죽는다.
내 마음의 발가락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다. 험한 일이 닥쳤다고 인생을 거꾸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무릎으로 기어가더라도 정상에 가야 한다. 칼날 능선을 올라가려면 방법은 하나다. 정신을 칼날처럼 세우는 것. 나는 신경을 세울 대로 세워 한 발 한 벌 옮겨갔다. 희미한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몸이 흔들리는 것이다. 높이 7,000미터 실선 위에서.
“저기 캔버스가 있다”
링 바닥은 캔버스라 불린다. 그래, 캔버스다. 화가가 붓질하는 캔버스. 복서가 승부를 겨루는 캔버스. 우리의 승부는 예술이 될 수 있다. 가자, 링으로, 내 인생을 향해. 저기 캔버스가 있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간 까닭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지만 곧장 죽지는 않았다. 고래한테 삼켜져서 사흘 밤낮을 캄캄한 뱃속에 갇혀 지냈다. 고래는 그런 후에 요나를 해변에 뱉어낸다. 하나님이 고래를 보냈지만, 요나가 고래 밥이 되라는 게 아니었다. 물에 빠져 죽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의 오른손
우리는 누군가의 손이 되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매단추를 채워주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잃어버린 연을 찾아주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작은 천수관음이 되고 싶다. ……세상을 위해 천 개의 팔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안식
나는 하나님 아래 그 섬세한 고리들로 이어진 다른 존재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었나. 그들을 위해 내가 살아나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아나리라고 다짐한 사람도 있는 것을. 그 같은 사람들을 지루하게 여기고, 내 일상을 지겨워한 것은 그들과 내 생이 앞으로 항상 내게 머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내게 남은 생이 이번처럼 이제 하루나 한 시간뿐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내 눈앞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선명하게 타들어갈 것인가.
태어나 가장 기쁜 악수
10미터, 20미터, 30미터, 나는 올라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고 있다. 나를 잊어버리는 몰아의 세계로.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절대 집중의 세계로. 내면으로 난 이 통로 끝의 세계로. 나는 이런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등산을 선택했다.
라라야, 안녕
생사는 운명에 달린다. 그 운명이 주는 생존의 기회는 집중한 사람한테만 보이고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오전 11시 23분
순전히 행복한 사람과 순전히 불행한 사람은 없다. 행복한 때와 불행한 때가 있을 뿐. 일생에는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있다. 시절에 따라 그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뿐. 가장 큰 행복은 괴로움이 가장 적을 때, 가장 큰 불행은 기쁨이 가장 적을 때이다.
생애 가장 긴 순간
죽음마저 허락할 만큼 마음을 비워버리자 심리적인 시야가 넓어졌다. 착륙하기 위해 아래로만 향하던 시선이 집착없이 온전한 하늘을 대했기 때문이다. 내려가야 한다는 강박을 딛고 도리어 솟구쳐서 조망을 확보했던 것도 그를 도왔다.
잃어버린 시계
그것은 아마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서 듣게 되면, 생의 이 순간이 그 죽음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해질 거라고. 지금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분명히 알게 될 거라고. 시시각각 기억의 바깥으로, 과거의 것으로 변색되는 이 한 번뿐인 현재가.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