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온 여인
훼손된 가족관계의 비극적 결말
강렬하고 과도한 애정관계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내면
『가을에 온 여인』은 ‘상처받은 고독한 영혼’과, 그로 인한 여성 인물들의 분열된 자아와 애정의 과도한 욕망이 비극적 파국으로 이어지는 박경리 애정소설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면서도 1960년대 당시 현대소설의 흐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사용한, 흔치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초반, 『가을에 온 여인』에서 주인공 신성표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푸른 저택’이라는 공간으로, 이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충돌하고 갈등이 축적되는 곳이었다. 커다란 철문 앞에 ‘에메랄드빛과 우윳빛의 앙상블로 된 고급 승용차’가 서 있는 푸른 저택은 1960년대의 현실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초현대식의 공간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부를 표상하는 왕궁에 다름 아니다. 푸른 저택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애욕과 불륜이 교차하며, 질투와 음모가 ‘관계의 지옥’을 만드는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욕망의 어긋남으로 인해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작가는 연애소설로서의 품격과 깊이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연애소설들 가운데서도 『가을에 온 여인』을 통해 불륜을 모티프로 하는 애정의 서사를 통해 애욕과 연애의 다른 점을 구별하였다. 나아가 ‘연애의 순수성’을 판단하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물질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자본주의 왕국에서도 사랑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도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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