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970년대 재야 민주인사로서 활동하던 작가가, 1974년 ‘문인간첩단사건’에 연루돼 10개월 간 겪었던 서대문구치소의 사람살이를 그린 장편소설로 새로운 통일론의 불씨를 당긴 작품이다. 여드레째 검찰 취조를 받는 상황에서부터 옥중의 여러 인물과 에피소드에 대한 묘사, 옆방 사상범과의 대화 장면이라든지, 심지어는 고향의 여학생 추억 등 작가의 옥중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등장인물도 대부분 실제인물을 모델로 했다.
이 소설은 작가인 주인공이 일본 여행중 우연히 만난 이북 고향학교 동창 때문에 간첩죄로 투옥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권력기관의 사건조작으로 갇히게 된 주인공은 감옥에서 자기 고향 출신의 간첩사형수를 대면하게 된다.주인공은 유사한 죄명을 갖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입장과 이념적 노선에 대해 토론하고 깊은 사유에 빠진다.이런 과정을 거쳐 작가는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남과 북의 (문)이 함께 열리는 일임을 보여준다.
1부는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되는 과정과 처음의 수사과정이,2부는 검찰에 송치되어 취조받는 과정이,3부는 감옥 안에서의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이 그려지고 있으며,4부는 주인공이 출옥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투옥 체험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당시의 정치 · 사회적 실상 속에 자신의 체험이 재배치되면서 순간순간 냉혹한 검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끝내는 그러한 이야기가 이 시대의 핵심적 주제인 진정한 통일이란 어떤 것이고 어떠해야 하는가를 향해 열려져 있다.
첫날
“들어가.”
가볍게 등을 떠다밀어 가마니때기 꺼풀이 얼기설기 일어선 텅 빈 방으로 들어서자, 곧장 등 뒤로 철커덕 쇳소리를 내며 문이 잠가졌다. 몹시 추운 겨울 저녁 여덟시쯤이었다. 그는 잠시 검정 고무신을 한짝씩 양손에 든 채 엉거주춤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다음 순간 화닥닥 놀라듯이 문 쪽으로 돌아서서 고무신 채로 바깥쪽으로 슬며시 밀어보았다. 덜컹덜컹 둔탁한 소리를 낼 뿐 열리지가 않는다. 순간 그는, 이게 웬일이야, 내가 웬일로 이런 델 왔지. 왈칵 조바심이 일어,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울부짖듯이 더욱 세게 흔들었다. 멀어져 가던 느슨한 발짝소리가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와 헌칠한 키의 흡사 해군 제독 같은 까망색 제모에 깜장색 제복 차림의 사내가 쇠창살 틈으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봐, 당신 정신 있어?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내가 왜 이런 델 왔지요?”
“당신 그걸, 나헌테 묻는 거야?”
“.....”
“올 만 하니까 왔겠지. 얌전하게 하룻밤 자봐. 자고나면 정신이 들 테니까. 왜 왔는지도 짐작이 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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